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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공부

위대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by YNJ family 202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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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덤 스미스의 생애

 

국부론의 저자로 잘 알려진 애덤 스미스는 인류 역사상 위대한 경제학자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년 6월 5일 ~ 1790년 1월 12일)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의 율리 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이다. 인류 경제학 및 여러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국부론이라는 책의 저자이다. 또한 고전 경제학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평가받는 애덤 스미스는 보편적으로 경제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며 현재까지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 애덤 스미스의 일생을 살펴보면 스코틀랜드 피폐의 커 큰 칼디의 세무 관리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4살에 알 수 없는 집시들에게 납치되었지만 의해서 구조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애덤 스미스의 아버지는 그 당시 스코틀랜드 바닷가에 불법적인 밀수가 증가한 것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애덤 스미스는 사람의 불법적인 행위의 악영향을 깨닫고 정부의 법과 규칙을 강화하는 조치 즉, 관세 보호 등의 방법을 찾게 되었다. 이것이 다음에 국부론이라는 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14살이 되던 해에 글래스고 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친구였던 프랜시스 허치슨으로부터 윤리 철학을 배우게 된다. 애덤 스미스는 1740년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으나, 옥스퍼드대학교의 학교생활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여 결국 자퇴하였다. 애덤 스미스는 1748년에 케임스경의 도움으로 영국의 에든버러에서 공개적인 강의를 하게 되었고, 학생들의 강의에 대한 호평이 계기가 되어 1751년 글래스고 대학 논리학 수업의 교수가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1759년 유럽 전역에 유명세를 알리게 된 도덕 감정론을 발표했고, 그 후에 2년여에 걸쳐 프랑스 등지를 여행하며 여러 나라의 행정 조직을 경험하고 여러 중농주의 사상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이들의 이론과 사상을 배우게 된다. 2년 동안의 여행을 끝나고 영국으로 귀국 후 애덤 스미스는 집중적인 저술 활동에 전념하여 1776년 현재까지 유명한 국부론을 발표하였다. 애덤 스미스는 이 국부론이라는 책에서 국가가 다양한 경제 활동에 간섭하지 않는 자유 경쟁 상태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와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고 발전된다고 주장하였다. 국부론은 경제학 사상 최초의 체계적인 내용으로 서술된 책으로 그 후의 여러 경제학적 학설의 바탕이 된 고전 중의 고전이다. 그 후 애던 덤 스미스는 1778년 스코틀랜드의 관세 위원이 되었고, 1787년에는 글래스고 대학교의 학장을 지냈다. 애덤 스미스는 현재까지 영국 정통파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윤리학자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2. 애덤 스미스의 이론

 

스미스는 시장 경제야말로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으며, 사회의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할 수 있다고 보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박애심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만을 그들에게 이야기할 뿐이다.” 그는 시장의 가격은 공정한 울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시장의 적절한 가격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독점이나 제삼자의 개입에 의한 어떤 것도 반대하였다.

3. 애덤스미스의 주장

 

애덤 스미스와 그의 여러 제자는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통한 자유로운 무역과 노동의 분업이 한 나라의 왕이나 군주보다는 일반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의 중앙계획경제 체제에서는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만 부자가 되는 데 반해 자유로운 시장경제는 일반 시민과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만큼 중요한 주장 중 하나는 애덤 스미스의 노동 가치설이다. 애덤 스미스는 모든 부가가치는 노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한 마르크스와는 다르게 객관적인 가치척도 수단으로서의 노동의 가치에 집중했다. 애덤 스미스는 금의 가치가 불확실한 시대라서 여러 나라 간 물건의 가치를 금과 같은 불안정한 측정 수단보다는 안정적 기준인 사람의 노동을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후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를 비판하였고 인간의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한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란 노동가치설을 주장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애덤 스미스가 잉여 가치론에 큰 영향을 준 셈이 되어 버렸다. 애덤 스미스의 사상은 두 가지의 계몽사상 융합이었다. 하나는 프랜시스 허치슨으로부터 깨달은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이며, 인간은 교육을 통하여 계몽하고 자유롭게 한다는 확신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데이비드 흄으로부터 깨달은 차갑고 회의적인 사람의 동기이다. 이런 두 가지 사상의 영향을 합리적으로 융합하여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며 현대 경제학의 기초 뼈대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애덤 스미스의 자유로운 시장 중심의 철학은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형태의 산업혁명 기본 틀을 만들었고 자유로운 가격이 시장을 결정한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 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마르크스의 잉여 가치론에 큰 영감을 주었다는 것과 자본주의 이전의 시대에도 어떤 형태로든 노동의 결과물을 대가로 받는 것에 대한 설명에는 일관성을 잃는 다점이 있다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까지도 신분이나 출생, 성별, 인종, 연령, 계급 등의 이유로 박탈하는 사회구조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시장을 통제하는 자들과 정치적인 결탁을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견제하지 않으면 기형적이고 오히려 계급으로 이루어진 사회상을 갖게 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이론은 일정 부분은 오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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